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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덩케르크> 비하인드 스토리

로설마니아 2017. 7. 30.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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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2017년 기대작 <덩케르크>를 오늘 아침 조조영화로 보았다.

<덩케르크>는 덩케르크 전투와 다이너모 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다. 지난 2016년 5월에 프랑스 덩케르크에서 촬영을 시작하였다고한다.



# 전쟁의 비하인드


덩케르크 전투는 제2차 세계 대전 서부전선에서 일어난 전투 중하나다. 1940년 5월 10일 윈스터 처칠은 영국의 총리가 된다.  프랑스 공방전이 시작된후로 독일군은 네덜란드를 침공하며 벨기에 서부 방면으로 진출 한다. 이에 대항한 프랑스는 모리스 가믈랭 딜 강을 마지노선으로 계획을 발동해 프랑스1군, 영국 원정군이 딜 강을 도하했다. 5월 14일 독일군은 빠르게 전진하여 영국 해협까지 전진하며 연합군 측면을 공격했다.


연합군은 반격작전이 실패하고, 5월 20일 독일군은 해안에 도달하며 영국 원정군과 프랑스 1군이 아르망티에르 근처에서 서로 단절되고 벨기에 육군과 프랑스 육군 대다수가 북부에 포위되었다.  해협도달이후 독일은 영국과 프랑스군을 포위 섬멸하고자 했다. 그러나 독일군은 덩케르크 근처에서 진격을 정지했다. 정지명령은 히틀러가 발령한 것이 아니다. 게르트 폰 룬트슈테트와 발터 폰 클루게가 덩케르크 진격을 멈추도록 합의했다. 이 부분이 전쟁에서 가장 논쟁이 된 부분이기도 하다.


독일군이 3일간 진격을 멈추는 동안 연합군은 탈출과 방어 준비를 할 시간을 벌었다. 영국군은 결국 덩케르크에서 약 33만명의 연합군 병사를 탈출시킨다. 1940년 5월 26일 ~ 6월 4일 다이나모 작전은 덩케르크에서 벨기에군과 영국 원정군 및 3개 프랑스군 등 초 34만여 명을 구출할 목적으로 실행된 작전이다.








영국 해군 중장 베트람 렘세이가 작전을 계획, 영국 윈스턴 처칠 총리에게 다이나모 룸에서 이 작전에 대한 개요를 설명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다이나모는 발전기가 있던 도버 성 지하의 해군지휘소의 방 이름이다. 여하튼, 9일 동안 860척에 달하는 선박이 급히 모여, 총 338,226명의 병사를 구출하였다. 영국군 192,226명, 프랑스군 139,000명이었다. 


이 유명한 덩케르크의 작은배들 Litter Ships of Dunkirk에는 화물선, 어선, 유람선 및 왕립 구명정협회의 구명정 등 민간선박이 긴급징발되어 해안에서 대기중인 병사들을 대형선박으로 이동시켰다. 이 작은 배들의 기적은 영국 국민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어 사기를 북돋았다. 실제로는 병사들의 80% 이상이 항구의 방파제에서 42척의 구축함 등 기타 대형 선박에 탑승해 철수하였다.














# 전쟁의 상흔


작전은 성공했지만, 영국군이 프랑스에 들고간 군수품들, 무기, 차량을 모두 버렸고, 수십만 프랑스 병사는 덩케르크에서 포로가 되었다. 6척 영국 구축함, 3척 프랑스 구축함, 9척 대형선박이 격침되었고, 19척 구축함이 손상되었다. 200척 이상의 연합국 선박이 침몰했고, 그만큼의 선박이 손상을 입었다. 







처칠은 자신의  제2차 세계대전에 관련 저서에 영국공군이 독일 공군에게서 철수하는 병사를 지키기 위해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밝혔다.  RAF의 지원이 없었다면 연합군은 이 철수를 성공일에 끝마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해안의 모래가 폭격의 충격을 흡수했다고 이야기 했다. 




# 철수하는 병사들은 공군에게 원망을 샀다?!


독일공군기가 132대의 항공기를 잃은 것에 비해 연합군의 손실은 474대 였을 만큼 몇 배로 더 혹독한 희생을 치뤘다. 하지만 철수하는 병사들은 이 커다란 지원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왜냐하면 해안 안개가 짙어서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인데. 영화속에서도 철수병들은 공군을 보곤 '너희들은 뭐했냐'라는 식으로 핀잔을 준다. 그들의 노고를 알아주는 이가 그만큼 적었고, 속앓이 했지만 어쨌든 그들의 희생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건졋따. 그들은 어떠한 지원도 없이 임무를 묵묵히 수행했다.


















# 덩케르크의 정신


영국 국민이 단결하여 역경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때 사용하는 단어로 지금도 영국인들에게서 들을 수 있다. 당시 처칠은 철수는 했지만 전쟁은 아직 이기지 않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으면 안되었다. 대실패가 대성공이 되었다라고 영국의 언론은 소개했다. 덩케르크에서 영국병사의 구출은 영국 구민으 사기를 정신적으로 성장시켜 그들이 독일과 화평하려던 생각도 접게 만들었다. 









# 덩케르크에서 구출된 병사들 어떻게 되었나


그들 대부분은 영국 본토의 수비를 맡았다. 침략의 징후가 보이지 않게 되자, 중동 및 기타 역으로 파견되기도 했다. 1944년 프랑스로 돌아와 육군의 중심이 되었다. 100,000명 이상 구출된  프랑스군은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영국 남서부의 여러 캠프로 보내져 본국으로 송환될때까지 일시적으로 대거했다. 후에 영국선박은 프랑스군을 브레스트, 쉘브루 기타 노르망디 및 브르타뉴반도의 항구로 이동시켰고 귀환한 병사의 절반정도가 휴전할 때까지 독일전선에 배치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영국해군이 영국군의 철수를 우선하여 원한 아닌 원한을 갖게된다. 영화에서도 영국 대령은 남아 프랑스 돕겠다고 남는 모습이 그려지긴 했지만, 자신들의 병력만 우선적으로 탈출시켰다는 점에서 원한을 살만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 장군이 영국군을 우선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말이다. 영국정부는 덩케르크에서 군수품 대량손실을 보충하기 위해 재정부담을 미국에 의존하였다.













# 영화 <덩케르크>를 보고 나서


한편의 작은 소설을 읽고 난 느낌이 들었다. 누구는 다큐같고 지루하다고 했지만, 이렇게 숨쉬듯이 살아았는 소설을 펼쳐든 느낌을 받지 않는다면 개인의 취향을 들어야하지 않을까. 어느 한부분 소홀한 부분이 없었고, 빈틈이 없었다. 이름모를 소년은 어이없고 안타까운 죽음마저도 잊지않았다. 


전쟁의 커다란 소용돌이 속에서 오해는 너무도 많았다. 서로 체감도는 너무도 달랐다. 우리는 전쟁을 알수없다. 아무리 많은 것을 보고 들어도 실감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잠시나마 그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했다. 


어느순간 민첩하게 살아남아야할 본능을 발휘시켰고, 두려움에 떨어야했고, 고통을 감내한 그 모든 순간들이 잊히지 않게 했다. 눈앞이 보이지 않았던 그 할아버지는 손 끝으로 그들을 보려고 했다. 살아돌아온 그 얼굴에 닿는 온기로 그들을 위로했다. 살아돌아온 것만으로도 수고했다고 말했다.


목숨도 평등해길바란다. 포화속에서도 목숨은 평등해지지 않았다. 같은 나라가 아니어서, 같은 부대가 아니어서 서로를 배척했다. 살아남는데 그것이 무슨소용일까 싶다. 덩케르크의 정신은 역경을 극복하는 단결된 자세이다. 젊은이들을 총알받이도 목숨을 받쳐야되는지 스스로 묻고 답한다. 한 목숨이라도 지켜내려는 모두의 의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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